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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ok review: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1)
    리뷰&생각일기 2019. 5. 25. 17:32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 - 도널드 노먼

    chap.1 review "사실 우리는 복잡한 것을 좋아한다"

     

    UX디자인에 대해 조금만 찾아보아도 도널드 노먼이라는 사람이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UX디자인의 개념을 창조한 사람이고 애플 부사장으로 있기도 했으며 [디자인과 인간심리]라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의 개념서를 펴냈다는 것 정도는 금방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러나 [디자인과 인간심리]와는 다소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데 원서 제목은 [Living with Complexity]-해석하면 "복잡함 속에서 살아가기"이다. 왜 국내에서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 "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출간되었는지는 "사람들은 정말 심플함을 원할까?"의 의문으로 시작되는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이해가 간다.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 그 나라의 백화점을 둘러본다는 저자는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특히 백색 가전을 관심있게 둘러보았다고 한다. 그가 발견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점은 한 개의 가전이 여러 역할을 하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세부 기능이나 가격에서는 별 차이가 없지만 한국 제품이 더 복잡해 보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홈쇼핑만 틀어도 제빙기와 정수기, LCD가 탑재된 냉장고라든가 공기청정기 역할을 하면서 음성인식과 자동 설정까지 가능한 에어컨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제품이 나온 데에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업이 일부러 그런 제품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복잡한 것을 원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장에 나온 것이다. 고로 디자이너는 맹목적으로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복잡함에 맞는, 제품과 사용자를 연결해주는 디자인을 내놓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1장에서 저자는 커피를 예로 들며 사실 우리는 복잡한 것을 좋다한다고 말한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시간과 노력, 비용, 맛 ]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것은 포기하는 트레이드오프를 한다. 커피의 각성 효과를 원하는 사람들은 공들여 만든 커피보다는 원두 캡슐로 빠르게 추출한 커피를 선택할 것이고 깊고 풍미있는 커피의 맛을 즐기길 원하는 사람들은 전문가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정성스럽게 내린 제대로 된 커피를 택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후자이다. 커피 매니아들은 완벽한 커피를 만는 복잡한 과정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느낀다. 무언가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읽고 쓰기, 자동차 운전, 악기 연주 등 우리는 무언가 가치있다고 여기는 일을 배울 때 그 일의 복잡함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것이 "적합하게 복잡하다면" 그것을 이해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Simple is the best". 디자인쪽으로 진지해지기 전에도 수 도 없이 들은 말이다. 스티브잡스의 고집이자 애플이라는 훌륭한 제품의 철학이기에 심플의 위대함을 더더욱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앱을 기획하거나 로고를 디자인할 때에도 속으로 조바심 내는 나를 평정시키는 최고의 말이었다. 그런데 심플이 정답이 아니라니-작가의 진짜 의도는 심플'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한 것 같지만- 조금 위험한 발언이 아닌가? 그러나 의심을 조금만 풀고 생각해보니 우리 주변에 복잡한 것이 미치는 영향력이 꽤 크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인의 필수 가전 밥솥을 보자. 국내에서는 1가구 1쿠쿠가 분명한 쿠쿠밥솥의 디자인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솔직히 조악하기가 그지 없다(스테인레스 재질로 나오는 신제품도 심미적으로 우수해보이진 않는다). 반면 무인양품의 밥솥은 보는 순간 최소한의 색과 선이 주는 깔끔함에 당장 신혼집 주방에 들이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인들은 쿠쿠를 쓴다. 미니멀리즘을 선호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한국인들은 쿠쿠 밥솥을 쓰며 디자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밥솥 뿐 만이 아니라 냉장고, 세탁기 등 다른 가전도 비슷하다.

    전형적인 쿠쿠 밥통과 무인양품의 밥통 디자인

    실생활에서의 영향력을 떠나서 취향으로서의 복잡함도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다. 저자가 제시한 커피의 예를 보며 나는 트러플 초콜렛에 대해 생각했다. 선물받은 트러플 초콜렛의 맛이 너무 훌륭해서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유투브를 찾았는데 트러플 초콜렛을 만드는 데에 들어가는 재료가 초콜렛, 생크림, 코코아 가루 3가지 뿐이라는 것을 알고 꽤나 실망한 적이 있다. 만드는 과정도 매우 단순했다. 초콜과 생크림을 함께 중탕시킨 뒤 손이든 도구든 편한 방법으로 트러플 모양으로 빚어 코코아 가루를 묻히면 끝이었다. 무언가 굉장히 특별한 것이 있을 줄 알았던 나에게는 트러플 초콜렛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일이었다.

     

    디자인 또한 그렇지 않을까? 깔끔한 것, 단순한 것이 보기 좋고 사용하기 좋을 때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최근에 집 베란다를 셀프 인테리어 하여 카페로 만들었는데 베란다의 벽을 휑하게 그냥 두려던 것을 언니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푸파이터스의 포스터를 갖다 붙였더니 한층 분위기가 살았다. 약간의 디자인을 추가한 것 만으로 멋이 살아난 것이다.

    베란다 카페에 붙인 푸파이터스 포스터

     뛰어난 그래픽 디자이너 폴라 셰어는 헬베티카를 너무 너무 싫어했다고 한다. 이 세상이 헬베티카로만 된 것이 싫어서 그것과 반대되는 타이포그래피를 추구했다고 한다. 대표작 [브링인다 노이즈, 브링인다 펑크] 뮤지컬의 포스터를 보면 그녀가 추구한 스타일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가 살려놓은 뉴저지 PA스쿨의 건물 외관을 봐도 그렇다. 연습용 UI디자인을 해보며 깔끔하고 보기 좋은 헬베티카 혹은 그것과 비슷한 애플SD네오고딕, 노토 산스, 에버닐 폰트만 추구했던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게으른 사람이었는지 그녀의 디자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폴라 셰어의 작품은 심플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데 보기에 좋으면서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다. 포스터는 일상에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지 않냐고 반문한다면 그가 기획한 건물은 어떨까. MUSIC, DRAMA, DANCE라는 글자로 도배된 건물을 보면 '저 복잡해보이는 건물이 예술과 관련된 건물이겠구나'하는 분명한 추론이 든다. 

    폴라 셰어가 대유행시킨 퍼블릭 셔터의 Bring in da noise bring in da funk 포스터
    폴라 셰어가 리인테리어한 뉴저지 Performing Art Center 건물

     

    실제로 폴라 셰어의 포스터 스타일은 대중의 눈을 사로 잡아 너도 나도 따라하는 유행이 되었고 건물 또한 뜨거운 반응을 얻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도널의 노먼의 주장대로 심플한 것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잠시 치워버리고 복잡한 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조건 단순한 것이 좋은게 아니다. 디자이너는 복잡한 것을 어떻게 풀어갈지, 사용자에게 혼란스러움을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복잡한 디자인을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요즘 "운동로그"라는 가제로 앱을 디자인하고 있는데 머릿 속에 있던 거창한 그림을 실제 UI로 구현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고 있었다. 단순함은 나이키나 애플의 로고처럼 최고의 디자인을 만들 수 도 있지만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역량 부족의 도피처로 이용될 수 도 있다. 어설프게 사용한 심플은 위험하다. 이 점을 항상 상기하고 나를 깨워나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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