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 열광해야 하는 이유"일요일 밤의 글쓰기 클럽 2019. 5. 12. 23:57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 한 지 어연 한달 째.
57키로에서 54~55를 왔다 갔다 하는 체중이 되었으니 2키로를 뺀 셈이다. 여기서 더는 안빠진다.
요가/필라테스, 러닝, 헬스. 하루에 3시간 가량 운동하고 식단까지 하는데 살이 왜이렇게 더디게 빠지는지 답답해서 예전 다이어트 할 때를 찾아보았다. 2017년, 5개월 동안 나는 무려 5키로를 뺐었다. 그때 적었던 블로그의 글을 보았는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첫 2개월은 유산소 30~40분, 웨이트 상/하체 30분+복부 30분씩 60분을 기본으로 하고, 그 다음 2개월은 유산소는 20~30분, 웨이트는 상/하체 40분+복부 40분+a 약 90분 가량을 투자했다고 쓰여있었다. 이렇게 까지 열심히 한 것은 잊고 있었다. 4개월 동안 꾸준히, 거의 빠짐 없이 운동을 나갔으며 갈 때마다 근력운동을 한시간 넘게, 많게는 한시간 반씩 하고 왔다니. 웨이트를 한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헬스장을 빠져 나오는 지금의 내가 왜 살이 빠지지 않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게다가 식단은 토마토, 고구마, 닭가슴살, 프로틴 가루 등을 번갈아가며 꾸준히 먹었었다. 식사의 기록은 인스타에도 있는데 사진을 주욱 넘겨보면 건강한 재료들로만 맛있게 구성되어 있는것이 참 부지런하기도 했다. 인바디 기록은 또 얼마나 다르냐면 최상치일 때 체지방이 11키로, 근육량도 적당하며 내장지방 레벨이 4였다. 지금의 체지방 16, 근육량 부족, 내장지방 레벨 7과는 천지차이이다. 내 몸이 저랬던 적이 있었다니.
생각해보니 그 때는 내 생애 제대로 된 첫 다이어트였다. 식욕도 자제하고 운동도 동영상을 보거나 트레이너에게 물어보고 배우며 재밌게 했었다. 지금도 하루 세시간이면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체계적으로, 열정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식단도 조절은 하지만 밥도 양껏 먹고 데이트가 있는 날이면 먹고 싶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 예전처럼 열심히 하지 않으니 예전처럼 빠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문득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서 이유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진리를 깨달았다. 처음만한 열정은 다시 생기지 않는 다는 것. 사실은 지금도 방법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다이어트를 할 열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다이어트 뿐 만이 아니라 모든 방면에서 그랬다. 첫 여행, 첫 취미, 첫 취향, 첫 공부, 첫 사랑까지. 두번째의 기회가 왔을 때 처음처럼 열정적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첫 배낭여행으로 터키를 갈 때는 터키어 공부도 하고 터키의 역사, 이슬람 문화, 관련 문학 작품까지 골고루 공부했다. 아야소피아가 왜 블루모스크로 불리는지, 트로이 목마가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증명했던 하인리히 슐리만의 이야기를 보며 셀축 여행 계획을 세웠다. 첫 취미로 SLR카메라를 배울 때는 셔터 스피드와 조리개 값, 감도에 따른 빛의 양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산과 강을 돌아다녔으며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이름을 외며 사진작가가 되기를 꿈꿨다. 락이라는 첫 음악적 취향을 가지게 되었을 때, 음악을 들으며 그렇게 피가 들끓었던 적은 없었다. 조페리와 스티븐 타일러의 만남과 에어로스미스의 탄생, 불화, 재결합까지의 스토리를 외웠으며 Stairway to heaven이 담긴 명반 레드제플린IV가 어떻게 생겼는지, 너바나로 시작된 얼터너티브 락의 역사 등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음악적 지식의 80%는 이때 알게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노래를 30번이고 들으며 한번은 보컬에 집중하고 그 다음은 일렉기타에 집중하고 그 다음은 베이스, 그 다음은 드럼... 찾아서 나오지 않는 가사는 그대로 받아 적은 다음에 직접 번역했다. 고3이 되며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 아는 영어 단어의 90%가 그 때 외운 것이다. 연애도 똑같다. 온전히 마음을 다해 사랑한 것도 그때 이후로는 없었다. 왜 사람들이 처음에 집착을 하는지 이제야 알았다. 처음의 간절함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처음이 마지막 기회라는 말은 아니다. 기회는 언젠간 다시 찾아 온다. 그러나 두번째는 첫번째만큼 강한 충격을 주지도,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지금도 나는 새로운 노래를 들어보며 아티스트를 발굴한다. 굉장한 음악가를 발견하지만 금방 잊는다. 끊임없이 취미를 만들지만 금방 놔버린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만 예전처럼 전전긍긍해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의 열정은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처음처럼 혼신을 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UI디자인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것을 깨달았다니 다행이다. 제2의 길을 선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곁눈질을 하기는 했었지만 지금처럼 분명하고 확고하게 마음먹은 적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방법을 모르니까 이것 저것 해볼 것이다. 나중에 오늘을 돌이켜 보며 인생에서 또 하나의 소중한 첫 경험을 만들었지, 하고 회상하고 싶다.
혹여나, 더이상의 처음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낙담하기에는 인생은 길다. 처음은 여러 형태로 올 수가 있다. 첫 취향은 지나갔지만 첫 "덕질"이 왔고 첫 공부는 지나갔지만 두번째 길이 온 것처럼. 평생 오게될 나의 처음에 기꺼이 몸과 마음을 내던질 것이다.모든 처음은 소중하니까.
그렇다고 두번째에 소홀히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처음을 통해 배웠으니 두번째는 좀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쉽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다이어트도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 처음은 가슴에 묻고 두번째는 처음을 토대로 배우고 발전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일요일 밤의 글쓰기 클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Sunday morning, 바나나, 커피, 벨벳 언더그라운드 (0) 2019.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