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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day morning, 바나나, 커피, 벨벳 언더그라운드
    일요일 밤의 글쓰기 클럽 2019. 5. 19. 12:20

    일요일 아침과 바나나가 도무지 무슨 상관이길래 사진까지 찍으며 유난 떨 일이냐고. 늦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꺼냈고, 커피를 꺼내니 배가 고파져서 거실 테이블 위에 있던 바나나를 집었고, 바나나를 집으니 오늘이 일요일 아침이라는 것이 생각 났고, 당연하게 떠오르는 노래가 있어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켰다. 이런 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선데이 모닝이 듣고 싶어지는 것은 비오는 십일월에 건즈앤로지즈의 노벰버 레인이 떠오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단순한 이미지가 만들어 주는 기분 좋은 환상.

     

    인터넷의 불특정 다수에게는 허영으로 비춰질 지도 모르나 현실에서는 하루의 만족도를 110% 끌어 올려주는 아주 유익한 환상에 젖어 랑다 카페로 들어왔다. 지난 내 일주일은 어땠는가. 다이어트와 디자인 두가지 큰 목표, 살을 53kg까지 빼기로 했고, 한창 구상 중인 어플 "운동로그"의 기본 뼈대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취미이자 감각 기르기 훈련으로 랑다 카페의 로고와 메뉴판을 구상하기로 했다. 우선 살은 54.7에 머물러 있고 (최저 54.2를 찍었었지만 안타깝게도 더 빼지 못했다) 운동로그는 "Fitlog"라는 이름으로 가장 기본적인 메인 3페이지만 구상했다. 랑다카페 로고는 아주 만족스럽게 완성하였지만 메뉴판을 구상하지 못했다. 일주일 7일 중 실질적으로 무언가에 집중한 시간은 약 4일 정도 되는 것 같고, 그 중 50%는 운동에, 35%는 랑다 카페 로고 제작 시행착오에, 나머지 15%만이 운동로그 제작에 쓴 것 같다. 가장 중요한 미션에 가장 적은 시간을 썼으니 내 생산성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라는 좌절이 밀려온다.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한 것은 칭찬해주고 싶지만 바로 어젯밤 밀려오는 무기력함과 우울감을 못 이기고 커피와 생라면과 다이제와 아이스크림까지 먹어치워 지난 6일간의 노력을 허사로 만든 것을 보면 난 역시나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나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무의식을 지배하던 그 믿음, 나를 끝없는 열등감의 우물에 가둬버린 그 믿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어떻게 이렇게 뿌리 깊게 자리 잡혔는지 모른다. 이 생각은 고등학교때부터 줄곧 나를 괴롭히고 올라가려는 나를 방해했다. 동시에  끊임 없는 투쟁으로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나의 역사는 내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발악의 연속이었기에. 지금도 그 과정 속에 있다. 나약의 늪에 빠져버린 어젯밤처럼, 목표의 반도 달성하지 못한 이번 한 주 처럼 매번 좌절하곤 한다. 될성부른 나무를 흉내내기 조차 왜이리 힘들까? 이른 기상, 하루 8시간 몰두,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 타이핑하기에는 너무 쉬운 것들이 지키기는 너무 어렵다. 나는 왜 쉽게 싫증내는 것일까? 포토샵을 키는 것도 처음에는 설레다가도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 나의 나태를 정당화할 회의(懷疑)거리를 찾는다. 김연아는 연습할 때 (잡)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해야만 하는 것'에만 집중했다고. '김연아처럼!'을 외치며 자신있게 뛰어들고는 어느 새 잡생각에 지배당하고 있는 나를 보면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그 신념이 잘못된 신념은 아닌 듯 하다.

     

    '그래도 나는 반성이라도 하잖아.' 오늘도 열심히 항변해보며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한다. 내일이라니, 정신차리고 아직 남아있는 오늘이나 어떻게 해보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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